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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리뷰 – 아버지를 다시 만나는 시간

[아버지의 해방일지] 리뷰 – 아버지를 다시 만나는 시간 빨치산이었던 아버지의 장례식 3일 동안 딸이 아버지의 진짜 얼굴을 마주하는 감동 소설

1.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고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고스란히 안고 살아야 했던 한 인물의 장례식 3일간을 그린 소설입니다. 이야기는 전남 구례를 배경으로, 빨치산이었던 아버지의 죽음과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조문 속에서 펼쳐집니다. 빨갱이라는 낙인이 평생을 따라다닌 아버지 고상욱. 그는 이념의 대립과 냉전의 틈 바구니에서 민중을 위한 삶을 택했지만, 그 대가로 감시와 멸시, 그리고 가족의 고통까지 감내해야 했습니다. 주인공 아리는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원망과 거리감으로 남아있던 기억을 하나씩 재구성하며, 아버지를 빨치산이 아닌 '한 인간'으로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전라도 사투리로 풀어낸 입말은 소설의 정서적 밀도를 높이며, 독자에게 진정성 있는 울림을 전합니다.

2. 입체적으로 살아 숨 쉬는 등장인물들

이 작품의 중심에는 주인공이자 상주인 딸 아리와 그녀의 아버지 고상욱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사회주의자이자 장기수 출신의 빨치산으로, 주변의 모든 불편과 오해를 감내하며 살았던 인물입니다. 그의 인생은 때론 희생이고, 때론 오지랖이지만, 결국 '사람'을 향한 진심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의 신념에 반발하면서도 깊은 유대감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조문객으로 찾아오는 사람들—빚보증을 떠안긴 이웃, 전우의 아내, 민노당원, 담배 친구였던 여학생 등—각자의 사연 속에 아버지의 숨겨진 얼굴이 드러납니다. 특히 아버지의 장례식은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증명하는 장이며, 아리는 그 속에서 과거의 단편들을 연결하며 아버지와 화해해 갑니다. 이 인물들의 교차는 소설을 더욱 입체적으로 만들어줍니다.

3. 죽음으로 비로소 다가온 '해방'과 이해

이 소설은 단순히 빨치산을 조명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가족과 사회, 이념과 신념, 그리고 인간에 대한 신뢰를 복원하는 이야기입니다. 아버지의 죽음은 그를 규정했던 '빨갱이'라는 굴레에서의 해방일 수 있었고, 딸 아리에게는 아버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시작이 되었습니다. 조문객들이 들려주는 아버지의 모습은 그가 단지 사상가가 아니라, 이웃을 도왔던 사람, 사랑을 실천했던 사람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아버지는 죽어서야 비로소 '빨치산의 딸'이라는 굴레로부터 딸을 해방시키고, 본래의 인간적 존재로 회복됩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개인의 기억과 공동체의 역사 사이에서, 진정한 용서와 이해가 어떻게 가능해지는지를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4.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과거와 현재, 사상과 삶, 이념과 사람 사이의 간극을 사려 깊게 묘사한 수작입니다. 한국 현대사 속 민간인의 삶을 사실적이고 따뜻하게 담아낸 이 소설은, 이념의 그늘에 가려진 인간 본연의 모습을 들여다보게 만듭니다. 이 책은 단지 역사 소설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특히 가족 내의 갈등과 이해, 세대를 넘나드는 화해의 과정을 통해, 우리 모두가 지닌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감정을 환기시킵니다. 사회적으로는 연좌제와 냉전의 유산을, 개인적으로는 관계 회복의 여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이 소설은, 지금 이 시대에 더욱 필요한 이야기입니다. 조용히 마음을 두드리는 서사가 필요할 때,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꼭 읽어보시길 권합니다.